연극 무대에서 배우의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고 한다. 카메라가 잡아주는 클로즈업도, 편집도 없이 오직 몸과 목소리로 관객과 직접 호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백석광이라는 배우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의 연기는 다층적이고 섬세하며, 담백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전달한다.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잊히지 않는 배우’가 된 이유를 살펴보자.
1. 무용에서 연출, 그리고 배우로—경계를 넘나든 예술가
백석광은 흔한 연극 배우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는 한예종 무용과에서 시작해 연극원 연출과로 재입학했다. 이 독특한 배경은 그의 연기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용수 출신답게 그는 몸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연기는 신체적 움직임과 공간 활용이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으며, 마이클 체홉이 강조한 ‘심리적 제스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연출 전공을 했다는 점도 그의 연기에 깊이를 더한다. 단순히 배우로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구조를 이해하고 캐릭터를 맥락 속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백석광의 연기는 무대 위에서 흐르는 공기를 바꿔놓는다. 그는 단순히 대사와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을 살아내고 있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마치 그가 무대 위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 자체가 그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2. 작품 속에서 빛난 백석광의 연기
백석광의 연기 스펙트럼은 넓다. 그는 매 작품마다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 〈문제적 인간 연산〉 – 광기와 고독이 뒤섞인 연산군을 연기하며,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무너져 가는 왕의 내면을 표현했다.
- 〈로베르토 쥬코〉 –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캐릭터를 통해 인간 내면의 야성을 드러냈다.
- 〈처의 감각〉 – 현실적인 감정 연기가 돋보이며,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전달했다.
- 〈그을린 사랑〉 – 전쟁과 가족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복잡한 감정을 조율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의 연기는 단순히 무대 위에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캐릭터를 자신의 일부처럼 느끼며, 모든 동작과 대사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무대 위에서 그의 감정은 유기적으로 흐르고,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주된다. 때로는 강렬하게 폭발하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무너진다. 이 미묘한 감정의 결을 살리는 능력이야말로 그를 특별한 배우로 만든다.
3. 상이 증명하는 배우, 그러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배우
백석광은 2020년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비롯해, 제31회 및 34회 동아무용콩쿠르 수상, 제7회 미장센영화제 감독상, 제50회 대종상단편영화제 시나리오상 등을 받았다.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와 연출에서도 인정받은 그의 이력은 그가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창작자로서도 뛰어난 감각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수상에 만족하기보다는 “상을 받을 때마다 내 부족한 점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태도는 그의 연기가 매번 새롭게 진화하는 이유다. 그는 배우이지만, 배우로서의 경계를 허무는 창작자다.
4. 백석광의 연기가 특별한 이유
✔ 신체와 감정의 완벽한 조화
무용을 전공한 그의 경험은 몸의 표현력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는 마이클 체홉의 ‘심리적 제스처’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의도가 있고, 감정이 실려 있다.
✔ 과장 없는 리얼리즘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절제하며, 섬세한 내면 연기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이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신체적 행동 메소드’와도 연결된다.
✔ 연출적 사고를 가진 배우
그는 단순히 대본을 읽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흐름과 연출적인 요소까지 고민하며 연기한다. 그렇기에 그의 연기는 매번 완성도가 높고, 캐릭터 해석이 깊다.
5. 백석광,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한국 연극계에는 뛰어난 배우들이 많지만, 백석광처럼 연극, 무용, 영화, 연출을 넘나들며 작품을 완성도 높게 해석하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의 연기는 ‘잘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는 연극 무대 위에서 한 인간이 어떤 순간을 살아가는지를 가장 진실하게 보여주는 배우다. 그는 특별한 기교 없이도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배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아닐까?
그의 무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백석광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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